렛츠고 필리핀7641을 걷는 시간
렛츠고 필리핀7641을 걷는 시간

현대 한국 법 현실에 대한 깊은 실망과 신앙적 정의에 대한 갈망이 담긴 외침

내가 생각하는 것: 주 그리스도는 그렇게 판결하지 않으신다

오늘도 뉴스에서 어떤 재판 결과를 봤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을 안다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이
진짜 정의를 세우고 있는가?

“내가 대법관이다”라는 말이
진실을 덮고, 약자를 짓밟는 면죄부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다시 복음서를 펼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판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하셨고,
그분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간음한 여인에게도
정죄보다 회복을 말씀하셨다.

오늘의 법이 정의를 이룬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말한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본다면, 지금 이 법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일들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는 도리어 심판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고, 기도한다.
세상이 정의롭지 않아도, 그분은 의로우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재명 재판에서 어떻게 판결하셨을까

요즘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보면, 법이 법 같지 않다.
증거는 엉성하고, 논리는 비약적이고, 대법관들의 발언은 설득력이 없다.
국민으로서 들을수록 어지럽고, 믿을수록 허탈하다.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판결하셨을까?”

예수님은 율법을 잘 아셨다.
그러나 그분은 율법의 글자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중시하셨다.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군중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권력자의 말이 아니라,
억눌린 자의 눈빛을 보셨다.
법조문의 모순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을 보셨다.

오늘의 대법원은
과연 사람을 보고 있는가?
정치와 여론, 권력의 흐름 속에
참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너의 정치적 이해가 아닌, 너의 진심을 본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법보다,
그분의 판결을 더 두렵게 여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삽니다. 내가 주님께 다가 갑니다.

빌라도식 정치 vs 예수님의 공의

그날, 예루살렘의 한 재판장에서
빌라도는 물을 떠다가 손을 씻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태복음 27:24)

겉으로는 책임을 피하는 듯한 발언이었지만,
실상은 정치적 계산이었다.
백성들의 분노를 달래고, 로마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죽인 판결이었다.

빌라도는 죄 없음을 알았고,
그럼에도 여론과 권력 사이에서 눈을 감았다.


오늘날의 정치와 얼마나 닮았는가.
“나는 법대로 했을 뿐이다.”
“검찰의 독립을 존중한다.”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말은 많지만, 책임은 없다.
진실은 희생당하고,
정치는 손을 씻는다.


반면, 예수님의 공의는 전혀 달랐다.

그분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그분은 회당에서 쫓겨났고,
바리새인들과 부딪히며,
한 푼도 안 되는 과부의 동전을 귀히 여기셨다.

그분의 공의는 **‘약자를 위한 것’**이었다.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며,
죄인을 정죄하기보다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공의는 법의 모양보다
사람의 회복에 관심이 있었다.


오늘의 한국 정치, 오늘의 재판장은
빌라도식 정치로 가득하다.
공의를 말하지만 정치를 하고,
진실을 말하지만 생명을 외면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공의를 믿는다.
그분은 단 한 번도 손을 씻지 않으셨다.
오히려 손에 못이 박히도록,
책임을 지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의 판결을 따르겠는가?


그래도 여러분 옆에 있습니다...그리고 필리핀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저도 어릴때 지나 지금 있네요

하나님의 얘기는 조금만 하겠습니다.

미안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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